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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댁 오늘 뭐 했수?/토마토새댁은 누구여?

결혼 14년, 그리고 14년..

by 토댁 2010. 1. 27.




 
1996년 오늘은 저 사진처럼 늙지는 않은 그대로 참 상큼함이 묻어나던 20대였습니다.

결혼식장에서도 설레지는 않은 것 같고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마냥 싱글벙글 미소지었던
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의 손을 건네주시고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시던 아빠의
마음은 알지도 못했던 철부지 신부였습니다.

꽉찬 14년을 살고 나서야
그날의 아버지가 이리도 그립습니다.

좀 더 일찍 철이 들었으면 날 그리도 사랑하던 아뻐에게 더 잘 해드렸을텐데
바보처럼 후회하는 딸입니다.

그 바보같던 딸이 아이를 셋을 낳으며 세번 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분만실에서
아빠를 찾았습니다.  "아빠 나 좀 도와줘!"
살아계실때도 툭하면 불러대던 "아빠!!! 이거 해줘!"
돌아가신 다음에도 나 필요하면 불러댑니다.  "아빠, 나 좀 도와줘!"





S라인의 몸매가 아니였음을 스스로 고백하지만
그래도 상큼한 날들은 저리 펑퍼짐한 아줌마 몸매는 더 아니였습니다.^^

아이 셋의 육아스트레스와
살림을 몰랐던 묶은 머리 위로 습관처럼 연필들을 꽂고 다니던 철부지가 하루 세 끼니의 스트레스와
육아와 함꼐 촌에서는 농사의 모든 것이 여자의 일임이 당연한데 하지 않는다는 질책에
숨이 막혀 죽을 것 같았습니다.

같이 공부하던 선후배들은 당당히 제 몫을  하는데
일개 무지한 촌부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나를 외면하고 싶어할때

그 순간, 어느 순간
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, 맘에서 지워 버리고
빈 손이 되었습니다.

각기 다른 세 아이들을 하나하나 달리 인정했고,
매일 밥상위를 오르는 콩나물 무침에도 매번 그 의미를 달리 부여하였습니다.
모든 것이 당연시 여자 몫이 되어 있는 농촌에서의 새댁의 삶도
내 능력껏 재미와 의미를 붙였습니다.

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농사관련도서를 읽으면 농사를 공부해야하는
내남자를 도울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몫을 잘 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순간 순간 노력했습니다.


그렇게 보낸 하루하루 들이 모여 14년 후 오늘이 되었습니다.
완전한 촌부로 변해있는 세 아이 엄마로써의 나의 모습에 놀라 아래위를 훑어보던
두 학기 나의 학생에서 의젓한 의사샘된 그 녀석에게 좀 민망했지만 그래도 의젓한 하얀 까운을 입은 모습이 참 대견했습니다.





결혼기념일 선물이라고 내미는 동석이의 쑥스러운 두 손이 어쩜그리 탐스럽고 다정스러운지
저 녀석이 내가 낳은 녀석이 맞나?/ 싶었습니다.

학교 앞 문방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골랐을까요?
들었나 놓았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요?
아빠, 엄마가 좋아하실까, 잘 어울릴까를 생각하며 만지작 거렸을 핸드폰집입니다.


14년을 같이 한 아이들,
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은 뭐든 OK지만,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  헤쳐나가게 나를 강하게 살게하는 내남자,

결혼 14년 안에는 오롯이 나로서의 나는 없었지만
결혼 14년 하루, 이틀, 사흘....지나는 .....나는 
내 안의 나에게 귀기울여 듣고 
내가 좋아하는 짬뽕을 씩씩하게 주문하는 
이제사 나를 만나고 철들어가는  나입니다.


14년을 잘 살아온 나,
앞으로 14년도 잘 살아볼랍니다.
14년 후 나는 과연 어떤 결혼생활을 했는지 벌써 기다려집니다.
14년 후를 기대해  주세요~~~